한글로 가장 오래된 편지 발견, 내용보니…<세계일보>
- 입력 2012.05.20 19:45:42, 수정 2012.05.20 19:45:42
●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나 장수(將帥)가 못 가게 하시니,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논밭은 다 소작 주고 농사 짓지 말고 가래질할 때는 기새(노비 이름으로 추정)보고 도우라 하소. (중략) 분과 바늘 여섯을 사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어머니와 아기를 돌보며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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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최근 복원에 성공한 대전 유성구 안정 나씨 선산의 분묘에서 발견된 한글 편지. 국가기록원 제공 |
“분과 바늘 여섯을 사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어머니와 아기를 돌보며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약 500년 전, 함경도로 간 군관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함경도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조선의 최북방 전선에서 아내를 위해 사 보낸 분(화장품)과 바늘에는 남편의 사랑이 짙게 묻어난다. 어머니와 아기를 걱정하는 마음도 애달프다.
조선시대 부부의 애절한 사랑을 담은 한글 편지가 20일 공개됐다. 주인공은 15세기 중·후반 무렵 인물로 추정되는 안정 나씨(安定 羅氏) 집안의 나신걸과 그의 부인 신창 맹씨(新昌 孟氏).
21일 부부의 날을 앞두고 공개된 이 편지는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지난해 5월 대전 유성구 안정 나씨 선산의 분묘 14기를 이장하면서 이들의 미라와 함께 출토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한글로 된 이 편지는 2점이다. 함경도의 명칭이 성종 1년(1470년)에 영안도로 개칭된 점으로 미루어 이 편지는 1470년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국가기록원은 보고 있다.
안정 나씨 집안은 대전 지역의 대표적인 선비 가문이었다. 발굴 당시 신창 맹씨의 머리 맡에서 발견된 편지에는 수신인이 ‘회덕 온양댁’으로 적혀 있었다. 군관의 신분 때문에 함경도로 떠난 남편이 고향의 아내에게 보낸 것으로 보인다.
첫 편지에는 갑작스레 함경도로 떠나면서 가족과 이별해야 하는 남편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나 장수(將帥)가 못 가게 하시니,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라며 “가지 말라고 하는데 구태여 가면 병조에서 잡아다가 귀양 보낼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영안도(지금의 함경도) 경성 군관이 되어 가네. 거기는 흰 베와 명주가 흔하고 무명이 아주 귀하니 옷을 미처 못 지을 것 같으면 가는 무명을 많이 보내소”라며 “한달 길이라 하니 양식도 넉넉히 해 주오”라고 덧붙였다.
두번째 편지에는 아내와 가족을 걱정하는 남편의 마음이 오롯이 녹아 있다. 그는 “논밭은 다 소작 주고 농사 짓지 말라”며 “가래질할 때는 기새(노비 이름으로 추정)보고 도우라 하소”라고 적었다. 이어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분과 바늘 여섯을 사 보내니 내년 가을까지 어머니와 아이를 잘 돌봐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분과 바늘은 대부분 청나라에서 수입돼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물산이 풍부하지 않았을 북변에서 귀한 물건을 시골 집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내에게 보낼 만큼 부부의 정이 깊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복원된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다. 국가기록원은 이 편지를 소장처인 대전 선사박물관에 전달할 예정이다.
송귀근 국가기록원장은 “부부의 날을 맞아 조선시대 부부의 정과 생활상을 담은 당시의 기록물을 복원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며 “16세기 전반의 장례문화, 복식문화, 한글 고어 등 당시의 생활풍습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이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