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 현장의 숨은 영웅들


11일 오전 9시 40분 인천 영종대교 상행선에서 안개로 인한 106중 추돌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사고 차량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

11일 오전 인천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 현장은 말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찌그러진 승용차, 사람들의 비명….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사고 현장에서 침착하게 다친 이를 보살피고,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이들이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한 여성은 “차에 사람이 깔려 있는데 승무원 옷(유니폼)을 입은 분들이 구해줬다”고 했다.

대한항공 손용철(45) 사무장과 김선미(29)·김지원(22)·명지은(26)·옥수민(32) 승무원이 주인공들이다. 사고 피해자들이 대한항공에 “고맙다”는 인사를 해오면서 이들의 선행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들은 하나같이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손 사무장과 승무원 4명은 비행을 마치고 사고 당일 오전 9시 30분 인천공항에서 6003번 공항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버스가 영종대교를 지날 때 앞쪽에서 사고가 났고, 버스는 수차례 급정거하다 멈춰섰다. 정지한 버스에 택시와 트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이 연속으로 추돌했고, 2차로에 있던 버스가 1차로 쪽으로 쏠리며 옆에 있던 택시를 들이받았다. 손 사무장은 비행기에서처럼 버스 안 상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승객 여러분, 차량 안쪽 좌석으로 앉으세요. 침착하세요!”, “2차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구경하려고 서 계시지 마세요!” 이후에도 10여 차례 버스를 들이받는 ‘쿵’ 소리가 지나가고 나서 추돌이 뜸해지자, 손 사무장과 승무원들은 15명가량의 승객을 인솔해 밖으로 나왔다. 일부 승객이 짐을 챙기려하자 그는 “짐은 나중에 찾으시고, 빨리 내립시다”라고 외쳤다.


손용철 대한항공 사무장

손 사무장은 119에 전화해 영종대교 상황을 알린 뒤, 곧바로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6003번 버스를 들이받은 택시였다. 50대 중반의 택시기사는 운전석 문을 간신히 연 상태에서 나오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 사무장은 “계속 굉음이 들리고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며 “뒤에서 계속 추돌이 있으니까 택시가 앞쪽으로 계속 밀렸고, 택시기사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손 사무장이 다가가 보니 택시기사의 오른쪽 다리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어른 주먹 크기 정도로 살점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그는 택시기사를 안전한 가로변으로 옮겼다. 김지원 승무원의 앞치마로 택시기사의 다리를 지혈하고, 옥수민 승무원의 코트를 입혀 체온을 유지시켰다. 손 사무장은 계속 말을 걸었다. “기사분이 소리를 지르면서 고통스러워 했어요. 골절이 되면 쇼크가 올 가능성이 커서, 계속 ‘집은 어디냐’, ‘가족은 어디 있느냐’ 등 말을 걸었죠.”

김 승무원은 얼굴에 유리 파편이 튄 외국인 근로자들을 돌봤다. 이들의 사장에게 대신 전화해 사고상황을 알려주기도 했다. 옥 승무원은 찌그러진 트럭 아래에 신음하고 있는 여성을 발견했다. 6003번 버스 10m 뒤쪽에 있던 추돌차량이었는데, 차들이 엉키다 보니 사람이 나올 수 없게 돼버린 것이었다. 옥 승무원은 “도와달라”며 소리쳤고, 손 사무장을 비롯한 시민들이 가서 여성을 구조해냈다. 김선미 승무원과 명지은 승무원은 사고현장을 뛰어다니며 119구급대원을 도왔다. 차 안에서 나오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119구급대원을 데리고 가 구조했다. 손 사무장은 119구급대원들과 함께 들것으로 환자를 날랐다. 손 사무장은 “전쟁같은 2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옥 승무원은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택시기사님이 어떻게 됐느냐”고 먼저 물었다. 그리곤 “저는 발만 동동 굴렀지, 정말 한 게 없다”고 했다. 다른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손 사무장은 “옷에 피가 많이 묻어서 (사람들이) 내가 많이 고생한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며 “그땐 다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했다. “입사한 지 19년 만에 처음 겪은 대형사고였어요. 응급상황이 닥치니까 기내 응급상황 대응법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무장, 승무원들도 같은 상황에 처하면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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