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혁진의 역사 새로읽기] 대동여지도가 중요한 이유
대동여지도를 만든 실학자 김정호를 그린 그림.
대동여지도를 만든 실학자 김정호를 그린 그림.
여러분이 주말에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어디에서 잘 것인지 등을 결정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때 이런 여행의 여정을 살펴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지도(地圖)입니다.

지도는 종이 위에 다양한 정보를 싣고 있습니다. 이 정보에는 자연환경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든 지명, 도로, 각종 건축물 등과 같은 인문환경이 함께 나타나 있어, 다른 고장이나 도시를 여행할 때 중요한 필수품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도가 있지도 않거나, 있다 해도 부족한 정보로만 가득 차 있으며 또 지도를 소유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면, 여행뿐 아니라 지역 간의 정보나 새로운 지리적 개발을 위한 계획조차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국토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나라를 발전시키려면 지리적 정보가 든 지도가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에 나라가 혼란해지고 백성의 삶이 어려워졌을 때 당시 성리학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해주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현실을 비판하며 백성이 잘 살고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한 학문인 실학(實學)이 등장합니다. 실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 지리 분야의 대표적인 결과로는 김정호가 완성한 대동여지도가 있습니다.

대동여지도가 이전의 다른 지도들보다 더 실용적이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목판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그 이전의 지도는 사람의 손으로 직접 그린 후, 필요한 경우 베껴서 소유해야 했기 때문에 일부 사람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동여지도는 목판으로 찍어서 보급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지도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베끼는 과정에 잘못 옮겨지는 경우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지도이지만 가지고 다니기 쉽게 만든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지도입니다. 분첩이란 지도를 일정한 크기로 나누는 것이며 절첩은 병풍처럼 접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입니다. 대동여지도는 총 22첩으로 구성돼 있고, 그 중 1첩은 지도에 관한 설명으로 나머지 21첩은 우리나라를 21층으로 나누었습니다. 실제로 이들을 모두 펼치면 세로 6.6m, 가로 4.0m의 대형지도이지만 접을 경우, 책 크기 정도가 되어 보관하기 쉽습니다. 또 분첩식이라
필요한 부분만 가지고 다니므로 활용하기도 편리합니다.

셋째, 현재의 범례에 해당하는 지도표(地圖標)를 만들어 산천(山川), 산성(山城), 도로(道路), 봉수(烽燧), 역참(驛站) 등 14항목에 걸쳐 22종의 기호를 써서 표시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에 정보를 더 많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넷째, 도로의 10리마다 점을 찍어놓아 지역과 지역 간의 거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이런 장점과 아울러 대동여지도는 전통적인 제작 양식을 바탕으로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축척을 넣어 만든 조선시대 지도 중 가장 정밀한 실측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는 한반도의 지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과학적으로 담아 정리함으로써 우리나라 지도의 수준을 높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후기의 어려운 상황에서 지도의 중요성을 알고, 많은 연구와 노력을 통해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업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에 대하여 일부 잘못 알려진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30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백두산을 수없이 올랐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교통 상황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며, 실제 당시에 전해지는 많은 지도를 모아 집대성한 노력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옳습니다. 물론 지도를 모으고 연구하면서 부족한 부분은 실제로 답사하여 채워 넣었던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또 완성된 대동여지도의 판목을 흥선대원군에게 바치자 그 정밀함에 놀란 조정에서는 국가의 기밀을 누설한다는 죄목으로 판목을 불태우고 김정호를 감옥에 가두었고 그로 인해 죽었다고 전해지만 이 또한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소각되었다는 대동여지도나 목판의 일부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국가 기밀을 누설한 죄를 지었다면 김정호를 도와줬던 최한기(崔漢綺)나 병조판서를 역임한 신헌(申櫶)같은 인물들이 처벌받았을 것인데 그런 죄를 받은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구교육대부설초등 교사)

2008-10-13 08:02:55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