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재지 : 두곡리 361번지가 아니고 366번지임.

2. 본문 설명 초입에 김쌍수가 소유, 관리하고 있다 하였으나 남계서원은 일개 개인의 소유가 아니고 '청도김씨 종중'입니다. 김쌍수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아마도 남계서원 내에 있는 '쌍수당'이라는 강당에서 '김쌍수'라는 이름을 따왔는지 모르나 사실과 맞지 않습니다. 밀양시 홈페이지에도 소유자와 관리자가 '청도김씨 종중'으로 나와 있습니다.

3. 병든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 : 김지대의 아버지는 김여흥(金余興)으로 고려시대 시중(侍中)의 벼슬을 지낸 인물입니다. '시중'은 고려 시대 광평성, 내사문하성, 중서문하성, 문하부의 으뜸 벼슬로 품계는 종일품이며, 뒤에 중찬(中贊), 정승(政丞) 따위로 이름을 고친 고위직 벼슬입니다. 아버지가 고위직에 계실때 거란족이 침입하여 큰 걱정을 하고 계시니 그 아들인 김지대가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분연히 종군을 한 것입니다.
종군당시 김지대가 지은 유명한 순두시(盾頭詩)에도 보면 '대친여보국'(代親如報國)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병든 아버지'라는 것은 아무러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시중'이라는 고위직에 계셨으며 아들인 김지대의 나이가 29세이니 아버지는 50이 넘었을 것인데 병든 아버지를 대신하여 군에 입대하였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고위직에 계신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종군한 것입니다.

4.  ‘국충신지환 친우자소우 충효가쌍수(國忠臣之患 親憂子所憂 忠孝可雙修)’ : 글자도 안맞고 시의 일부분이 빠져있습니다. 원문과 해석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라의 걱정은 신하의 걱정이고 / 國患臣之患(국환신지환)
어버이 근심은 자식의 근심일세 / 親憂子所憂(친우자소우)
어버이를 대신해 나라에 보답한다면 / 代親如報國(대친여보국)
충성과 효도를 모두 이룰 수 있으리 / 忠孝可雙修(충효가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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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인터넷판 두산백과사전 남계서원 부분

남계서원
지정종목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경남문화재자료 제229호
지정일 1996년 03월 11일
시대 조선
종류/분류 서원
소재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361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29호로 지정되었으며 김쌍수가 소유, 관리하고 있다. 쌍수당(雙修堂) 경내에 있으며 1704년(숙종 30) 고려 중기에 평장사를 지낸 김지대(金之岱)의 위업을 기리기 위하여 청도 고을 사림의 중론으로 창건하였다.

처음에는 사당을 충효사(忠孝祠)라 하고 강당을 쌍수당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김지대가 병든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하면서 지은 시에 ‘국충신지환 친우자소우 충효가쌍수(國忠臣之患 親憂子所憂 忠孝可雙修)’라고 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었으나 후손들이 강당을 보수하거나 중창하여 사용해왔다. 1907년(순종 1) 강당을 새로 지었으며 1954년 다시 후손들이 낡은 강당을 철거하고 쌍수당으로 확장,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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