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3월 12일 念修堂에서 개최된 元老會議에 제출된 意見을 보완한 것임.

 

復舊하느냐, 移葬하느냐?

--淸道 金氏의 死活이 걸린 問題--

鰲山學會 金 相武 (麗川派 32世)

 

未來를 내다보고 後孫들을 위해서 始祖 墓를 移葬하자!

 

過去에 발목 잡혀 한 발짝도 未來 향해 나아가지 못한 淸道金氏

우리는 지난 80年 가까운 歲月을 過去에 붙잡혀 한 발짝도 未來를 向하여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始祖 英憲公 墓所의 問題와 先祖들을 위한 각종 사업 때문이었다. 이 사업들은 물론 大宗會가 해야 할 基礎事業이며, 後孫들을 위한 사업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머물렀을 뿐, 後孫들을 先祖들과 이어주고, 積極的인 關心을 불러일으키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會則에 獎學事業 項目이 있지만, 名目뿐이었다.

특히 우리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始祖公 墓所의 安全問題였다. 安全을 위하여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1933년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그 해에 封墳環石과 階面周圍布石 工事를 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73년에는 5大 事業의 일환으로 階面擴張 및 築臺工事를 했고(이상 大宗誌 339-340, 348-350 및 현 世譜 1권 55쪽 사진 참조), 그 뒤 33년 뒤인 2006년(?)의 集中豪雨로 階節이 유실되어 이를 계기로 聖域化事業이라는 意慾的인 名分을 걸고 공사한 것(淸道金氏 會報 52호 7-8쪽)이 오늘의 사태로 발전되었다. 그 동안의 刻苦의 努力과 각 門中과 많은 宗人들의 精誠과 誠金이 山沙汰가 난 것처럼 一時에 쓸려갔고, 급기야는 墓所의 安全性마저 風前燈火 지경에 이르렀다. 雪上加霜으로 이를 둘러싼 책임 운운으로 벌어진 언쟁과 宗人간의 告訴告發 사태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름지기 過去의 일을 가지고 두고두고 되씹는 것은 淸道金氏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흔히 생각하듯이 우리가 復舊하면 千年, 萬年 갈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補修하면 되겠지 하고 우리는 안이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現場 事情上, 현재 기술로 가능한 最善의 工法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제시된 設計 案은 次善策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돈은 둘째 치고, 이 案의 工法으로 復舊한다면 몇 년 갈 것인가? 우리는 半永久的이겠지 하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希望事項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最善이 아니라 最惡의 경우를 산정하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그런데, 土木 技術上으로는 永久的이라는 것도 없고, 半永久的이라는 것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은근히 100年은 가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들의 希望 事項일지 모른다. 요행을 바라는 人間의 心理라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이럴 때 我田引水的인 생각을 하지 말고, 客觀的인 冷情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未來가 不透明한 일을 벌여도 될까?

 

100年 大計가 아니라, 千年, 萬年大計를 세워,

始祖公을 千年, 萬年 安全한 자리에 모시자!

英憲公을 경주의 武烈王陵처럼 安全한 地帶로 모시자! 100年 大計가 아니라, 千年, 萬年大計를 세우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前進하기는커녕 또 後退한다. 계속 이대로 後退하면 未來는 없다. 단시일 내에 막대한 復舊費 마련도 不可能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未來를 위한 餘力도 없어진다. 따라서 淸道金氏는 後退를 거듭할 뿐이리라.

엄연한 現實을 直視하자! 後孫들이 마음 놓고 1년 내내 편리하게 찾아뵈올 수 있는 곳으로 移葬하자! 英憲公 후손 20世 忠자臣자 할아버지께서 일찌감치 南河洞에 자리를 잡으시고, 始祖公 할아버지께서 납시기를 400年 훨씬 넘게 기다리고 계신다. 4월 21일부터 5월 20일은 潤 3月이다. 마침 때도 알맞다.

 

과연 明堂인가?

흔히들 그 자리를 “금 닭이 알을 품은 자리”라고 하고, 또 일부에서는 “제비 설”이라고 해석한다. 과연 明堂일까? 묘소 바로 밑으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많은 물이 흐른다. 그 물이 어디서 그렇게 모여 그 밑으로 一年 내내 많든 적든 水路를 이루고 흘러내릴까? 또 비가 쏟아지면 그런 엄청난 힘으로 산사태를 일으킬까? 그렇다면 그 자리가 明堂일까?

世譜에 의하면, 2世는 그렇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3世, 4世, 5世 이렇게 3代에 걸쳐서는 이렇다 할 記錄이 없다. 이런 사실은 無名人事로 지냈다는 말이 되겠는데, 英憲公 墓所가 明堂이라면 왜 孫. 曾孫, 玄孫이 그렇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6世의 漢자 貴자 할아버지는 그만한 이름 있는 분이 되신 것은 아마도 바로 윗대 산소를 잘 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明堂이라는 것은 固定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氣는 돌지 결코 한자리에 붙박혀 있지 않는다. 이를테면, 金烏山에 기가 모였다가, 여기저기 딴 데로 옮겨갔다고 보아야 하리라. 明堂은 壽命이 긴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미련을 단호하게 버리자.

 

이미 始祖公 墓所는 파헤쳐진 일이 있었던 것

200여 년 전 잃어버린 墓를 찾는 과정애서 始祖公의 墓所는 파헤쳐진 일이 있었다. 眞僞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 祖上들이 손수 그랬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精氣는 사라진 것이다.

 

水災를 당하면 移徙하는 법

 

念修堂은 水災를 당했다. 객사와 관리동이 흔적도 없어졌고, 念修堂 본채도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 객사와 관리동 그 자리에 미련하게 복원도 할 수 없으니 齋室의 기능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고래로 水災를 당하면 移徙를 했다. 齋室도 水災를 당했지만 墓所도 水災를 당했다. 이제 거기는 운이 다 했다고 보아야 한다.

 

明堂이라면 移葬한 뒤에 高價로 팔자

어떤 風水가 그 자리가 明堂이라고 한다는 말을 믿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移葬한 뒤에 그 風水에게 돈을 듬뿍 쥐어주고, 數十億에 팔아달라고 부탁하자. 눈먼 購買者가 있을지 모른다.

 

山沙汰는 막을 수 없는 것, 自然法則에 逆行하지 말자

우리는 日帝治下 때부터 野山의 山沙汰 豫防과 收拾에 대한 노력을 해왔다. 주로 오리나무를 심고, 小規模의 土木工事 정도였다. 朴正熙 大統領 시절의 山林保護法은 결정적으로 山沙汰의 豫防에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深山幽谷의 山沙汰는 自然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英憲公이 묻힌 자리는 深山幽谷에 가깝다. 우리는 그 동안 自然을 모르고, 어설픈 재주를 부렸다. 한마디로 너무 慾心을 부렸다. 自然을 拒逆하지 말자. 自然法則에 逆行하지 말자. 自然을 拒逆하는 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 언젠가는 벌을 받는다. 따라서 山沙汰는 避하는 것이 上策이다.

淸道金氏 死活의 문제, 大宗會는 後孫들을 위한 政策을!

鰲山學會는 당면한 문제를 淸道金氏의 死活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문제를 잘못 풀면 歷史의 罪人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大宗會는 後孫들을 위한 政策을 세워라. 英憲公도 결코 老人들의 것이 아니라 後孫들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後孫들이 가까이 갈 수 있고 친해질 수 있도록 하는데 最善을 다해야 한다. 그러니까 그 많은 補修工事費를 줄이고 未來에다 투자하자!

 

工事費 5億원을 6월 말까지 마련할 수 있을까?

문제는 돈이다. 늦어도 工事가 만료될 6월말까지 최소한 5億원을 마련해야 한다. 現實的인 이런 문제를 勘案하더라도, 最善의 方案은 移葬뿐이다.

 

今年에는 移葬을 來年에는 齋室을 짓자. 그리고 失墓한 祖上들의 位牌를 모시자.

금년에는 급한 대로 이장하고, 碑石과 石物을 옮기고, 내년에는 齋室을 짓자. 移葬費用은 1億원도 들지 않을 것이다. 길도 이장을 하는 데는 거의 지장이 없다. 나무를 베어내고 땅을 깎을 것도 거의 없다. 잔디를 깔고 조경수 몇 포기 심으면 된다. 土質은 그만하면 最高다. 그 일대는 花崗巖地代다. 따라서 일부 鋪裝되지 않은 길이라도 큰 문제가 없다. 길의 擴張이나 鋪裝은 자금이 조달 되는대로 다음으로 미루면 된다.

이 기회에 그 동안 숙제였던 失墓한 祖上들의 位牌를 모실 곳을 마련하고 논란이 많았던 문제를 매듭짓자. 仁同張氏들은 1世에서 13世(?)에 이르기까지 위패를 모셔놓았다.

이렇게 한다면 大宗會의 運營도 무리가 없고, 이 일에 수고하는 분들의 肉體的인, 精神的인 부담도 거의 없다.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齋室建立의 경우, 그 地域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어, 當局의 許可가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라고도 하겠지만, 自然災害로 인한 復舊事業의 일환이기 때문에, 비록 行政區域은 다르지만, 당국의 아량이 있으리라. 만부득이 하면, 그린벨트가 解除된 땅을 돈으로 마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南河洞 宗孫들이 歡迎할까?

결론적으로 환영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손해가 없고, 오히려 득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先山의 保存에도 좋을 것이다. 門中代表께서는 긍정적이었지만, 門中會議에 회부해봐야 하다는 말씀만 하셨다. 물론이죠. 杜谷洞에도 알아봤지만 거기는 그만한 空間이 없다고 한다. 갈 곳은 南河洞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