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 청도 김공윤정 공적비
心湖 淸道 金公潤貞 功蹟碑


<碑 文>

公(공)의 諱(휘)는 潤貞
(윤정)이요 字(자)는 德亨
(덕형)이며 號(호)는 心湖
(심호)로서 淸道人(청도인)
이니 始祖(시조) 高麗朝太傳(고려조태전) 金紫光祿大夫(금자광
록대부) 平章事(평장사)였던 鰲山君(오산군) 영헌공(英憲公)의
後裔(후예)이다.
春陽面(춘양면) 石亭里(석정리)에서 태어났으니 天稟(천품)이
仁厚(인후)하고 才能(재능)이 出衆(출중)하여 義俠心(의협심)
이 남달리 强(강)했다. 少時(소시)부터 公務(공무)에 就(취)하
면 언제나 所任(소임)을 完遂(완수)하여 業蹟(업적)이 燦然(찬
연)했고 晩入杏壇(만입행단) 했으나 每事(매사)가 始終如一(시종
여일) 하여 衆人(중인)의 信望(신망)이 두터웠으며 入鄕先祖(입
향선조) 進士公(진사공) 次山(차산) 設壇(설단)과 存養齋室(존
양재실)을 移建時(이건시)에는 스스로 主幹(주간)하여 工費(공
비)의 節減(절감)과 完壁(완벽)한 施工(시공)을 다하여 强(강)
한 責任感(책임감)과 敏活(민활)한 力量(역량)을 誇示(과시)하
여 周圍(주위)의 稱頌(칭송)이 至極(지극) 했다. 뿐만 아니라 四
世孫(4세손) 德軒齋(덕헌재)의 祭室(제실)을 復建(복건)하고
奎章閣(규장각) 의 많은 文獻(문헌)을 낱낱이 뒤져서 선조의 숨은
史蹟(사적)을 찾아내어 後進(후진)에게 崇祖思想(숭조사상)을
宣揚(선양)하고 愛族之心(애족지심)을 鼓吹(고취)하여 子孫(자
손)의 道理(도리)를 다하고 나아가 萬代(만대)의 龜鑑(귀감)으
로 삼았다.
公(공)은 한때 春陽(춘양)의 面行政(면행정)에 參與(참여)했
고 이어서 面長(면장)의 職責(직책)에 拔擢(발탁)되어 향민(鄕
民)의 福利增進(복리증진)에 功獻(공헌)했고 아울러 初代(초대)
農業協同組合長(농업협동조합장)과 水利組合長(수리조합장) 等
(등)을 두루 歷任(역임)하였으며 綾州鄕校(능주향교) 總務(총
무) 및 儒道會長職(유도회장직)의 在任(재임) 十餘年(10여년)
동안에는 散在財産(산재재산)의 整備(정비)와 儒林(유림)의 大
同團合과 敦睦(돈목)을 主張(주장)하여 不朽(불후)의 功蹟(공
적)을 세우기도 했다. 實(실)로 公(공)은 全(전) 生涯(생애)를
通(통)하여 公直無私(공직무사)를 座右銘(좌우명)으로 犧牲(희
생)과 公益(공익)으로 寧日(영일)없는 旅程(여정)을 마치고
1982年 十月二十一日 七十七歲(77세)를 一期(일기)로 他界(타
계)하니 嗚呼(오호) 人生(인생)의 無常(무상)함이 如是乎(여시
호) 夫人(부인) 密陽朴氏(밀양박씨)와의 사이에 長男(장남) 重
根(중근) 次男(차남) 漢根(한근) 三男(삼남) 榮根(영근) 四男
(사남) 海根(해근) 等(등)을 두어 各者(각자) 生業(생업)에 從
事(종사)케하고 그 밑에 또한 孫男孫女(손남손녀) 많으니 代代連
綿(대대연면)하리라. 敍上(서상)은 1986年 三月 春亨(춘형) 시
大宗會(대종회)에서 公(공)의 거룩한 業蹟(업적)을 後世(후세)
에 永遠(영원)히 기리고자 하는 衆意(중의)가 決議(결의)되어
삼가 이 功蹟碑(공적비)를 여기에 세우는 바이다.
公(공)의 葬地(장지)는 鄕里(향리) 案山(안산) 九井地(구정지)
艮坐(간좌)이다.
1986年 丙寅(병인) 十月 日
淸道金氏(청도김씨) 綾州宗親一同(능주종친일동) 謹竪(근수)
  소재지 전남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
  건립연대 1986년
  규 모 총높이:3.05m 비높이:1.55m 넓이:0.67m 두께:0.27m
출처:http://www.hwasun.go.kr/hwasun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