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缾山) 김난상(金鸞祥) 선조님(12世, 榮州派)은 조선중기에 우리 문중을 빛내신 선조님으로 금포(錦浦) 김시성(金是聲) 선조님(24世, 南河派)과 함께 불천위(不遷位)이십니다.
  병산공에 대한 자세한 행장은 본 홈페이지 [청도김문] > [가문을 빛낸 선조]에 나와 있으며, 1570년 12월 25일 졸(卒)하시어 아버지 습독공(習讀公)의 묘역인 교동(喬桐) 화개산(華盖山) 북쪽 대우동(大牛洞)에 모셨으나, 1891년(辛卯) 영남의 구성(龜城) 서쪽으로 이거하였다가  1914년(甲寅) 6월 다시 구수동 임좌로 이장하였습니다.
  강화 교동에는 辛卯年 이장후 입재(立齋) 정공(鄭公)―통훈대부(通訓大夫) 전행(前行)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진양(晉陽) 정종로(鄭宗魯)―이 지은 묘비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한편 목사공 종중에서는 작년에 靈字 雨字 선조님의 묘를 이장하면서 목사공 묘소 우축에 있는 고비(古碑)전시장을 정비하였는데, 이때 기왕 고비전시장을 정리하는 참이니 교동에 있는 영우선조님의 후손인 병산공의 구비(舊碑)를 함께 모시자 하여 어렵게 모셔왔으나, 흙속에 묻혀 500년 가까이 지나다 보니 글자의 형상조차 남아있지 않아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하여 병산공 구비(舊碑)의 비문을 구하고자 애를 쓰던중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의 [문화데이터광장]에서 비문 원본과 해석을 구하여 여기에 전재(全載)하게 되었습니다.(별첨)

  참고로 전재(별첨)하는 내용 말미에 당초 병산공의 구비(舊碑) 이후의 비문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함께 전재(별첨)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