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전남 화순군에서 운영하는 "청정골 화순뉴스(http://news.hwasun.go.kr/)"라는 사이트에 실려있는 아래와 같은 글을 보게되었습니다.

조공지승배청도김씨열비

曺公智承配淸道金氏烈碑


<碑 文>

烈婦姓金籍淸道日源女胡剛
公漸后在父家著孝順歸爲昌寧
曺智承室孝舅姑敬夫子崖婦
道性勤儉衣不華麗罕言笑謹守
禮度夫嘗病革割指和藥而得效又罹重崇血指注口竟爾不救命也奈何烈
婦時年二十二未有一育矢心下從旣而飜然曰夫祀誰託遂忍痛抑悲送終
以禮析箸有年復同居于舅姑家旨養不乏慈愛彌篤取夫從子秉秀爲夫後
自處以未亡人攻苦治業家免窘艱終以天年行烈與罔念夫家崩迫致命者
豈可同日而語哉士林交章而闡揚泮儒嘉尙而褒彰但天聽無階旌表邈然
後人恨惜秉秀四男中煥自煥基煥益煥詩云釐以女士從以孫子是也方謀
竪石于所居淸溪之宅里道周徵文於余不以昏○强辭銘曰
運入百六倫綱○婦之爲烈世罕有自誓柏舟金烈婦之死靡他守其義余
乃表出銘于石以愧不忠不孝者
歲壬子元月上弘 達城 裵錫冕 撰

<번역문>

부인(夫人)의 성(姓)은 김씨요 적(籍)은 청도(淸道)이고 일원(日源)의 따님이요 호강공(胡剛公) 점(漸)의 후손이다. 부모에게 효(孝)하고 어른들께 공경하며 정숙(貞淑)한 규녀(閨女)로서 창녕(昌寧) 조지승(曺智承)의 아내가 되었다.
남편과 시부모님께 부덕(婦德)의 지성을 다하며 부지런하고 검소한 천성으로 항상 옷차림이 검소하며 일언일소(一言一笑)도 신중하고 일거일동(一擧一動) 예를 지키었다.
일찍 남편이 병으로 앓게 되자 온갖 약제며 단지의 지성으로 병을 일차 치료하였고 그 후 다시 신음한 중증(重症)에는 백약무효(百藥無效)로 어쩔 수 없는 운명(殞命)을 당하였으니 그 때 나이 22세(歲)이었다.
한점 혈육이 없는 외로운 몸으로 하종(下從)의 길 밖에 없다고 다짐하였으나 다시 내가 죽으면 자식 없는 남편 제사를 뉘가 지낼까 하고 마음 고쳐먹고 슬픔도 참고 아픔도 견디며 예식 따라 후히 장사하고 외출을 단절함과 복을 마친 다음 다시 시부모님께 돌아가 봉양에 성의를 다하였다. 종자(從子) 병수(秉秀)로 양아들을 삼고 항상 미망인(未亡人)으로 자처(自處)하였다.
치산(治産)에 온갖 노고를 마다 않고 드디어 어려움 없는 살림을 이루고 천명대로 살다가 가시니 이 장한 열행(烈行)은 가세를 불구하고 하종(下從)하는 순절(殉節)과는 같이 논(論)할 수 없는 장한 일이었다.
이에 사림(士林)들은 글을 지어 천양(闡揚)하고 향교 유림들은 표창을 내리니 단 조정의 정표(旌表) 은전(恩典)이 없었음에 애석할 뿐이었다.
다행히 병수(秉秀)가 4남(四男)을 두니 중환(中煥), 자환(自煥), 기환(基煥), 익환(益煥) 이었다.
시전(詩傳)에 이르기를, 한 가정을 다스린 한 여사(女士)에 많은 손자(孫子) 줄을 이루었다 하였으니 시인(詩人)의 이 말이 너무나 일치하였다.
이 업적을 자손들이 비석에 길이 새기어 살던 마을 위에 세우고자 글을 나에게 부탁하였다. 이에 명(銘)을 지으노니 강상(綱常) 윤리가 무너진 변천된 시운(時運)에 부인의 열행(烈行) 한 시대 드문 일이었다. 스스로 수절만을 생각하여 백주시(栢舟詩)를 읊으니 죽도록 일편단심 절의(節義)였다. 이 행적을 돌에 새기어 불효 불충(不孝不忠)을 깨우치노라.
1972(임자)년 1월 상순
달성(達城) 배석면(裵錫冕) 글을 짓다.

소재지 전남 화순군 한천면 한계리
건립연대 1972년
규 모 총높이:2.10m 비높이:1.80m 넓이:0.62m 두께: m

윗글에도 나와 있지만 우리 청도김문의 따님 한분이 창녕조씨 집안에 시집을 갔다가 남편을 일찍 여의고 정절을 고결하게 지키고 살면서 가문을 번성하게 하여 후세에 열비가 세워진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을 보다가 문득 일원(日源)의 따님이요 호강공(胡剛公) 점(漸)의 후손이신 열비의 주인공이 궁금해졌습니다.
우리 청도김문의 족보에는 어떻게 실려있을까...

현재 우리 청도김문의 족보는 1984년도에 간행된 갑자신보가 가장 최근의 족보입니다.
"일원(日源)의 따님"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 갑자신보에서 이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나 이미 전자족보의 준비작업으로 30세까지 입력이 끝나가는 상황이라 족보DB에서 "일원(日源)"의 자녀들을 검색하여보니 바로 검색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일원(日源)"이라는 이름은 한명뿐이었고 아들1명에 따님 세분을 두셨으며, 열비의 주인공, 즉 조지승의 아내가 되신분은 막내따님이셨습니다.
갑자신보 7권중 3권 665페이지에 "女 曺智承 昌寧人 子秉秀" 이렇게 실려있었습니다.
파는 능주(綾州)파이고 世數는 29世이었습니다.

전자족보가 완성이 되어 홈페이지에 서비스가 시작되면, 이렇게 이름만으로 바로 선조님이나 후손을 찾을 수 있으며, 계파는 물론 항렬까지 바로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검색대상이 갑자신보에 등재되어있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지요.
전자족보는 본인의 세수와 아버지의 한글이름 한자이름, 본인의 한글이름 한자이름, 갑자신보의 등재된 권(卷)과 면(面)의 표시, 아들 딸 양자 등의 구분, 장지와 차지등 출생순서, 양자일 경우 생부의 이름 등 계보를 파악하는데 꼭 필요한 필수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향후 인터넷상에서 실시간으로 더 상세한 내용을 보충할 것이며, 갑자신보 이후에 태어나신 분들의 등재나 결혼, 사망 등 변동사항도 빠짐없이 업데이트를 해 나갈 것입니다.

일족여러분들의 아낌없는 성원을 바라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