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정사(四陽精舍)

김 헌 원

  대구시 북구 관문동 사수리의 한강공원은 옛 칠곡군의 행정구역였는데 지금은 대구시 북구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경부고속도로 북구 IC에서 상행선 지천으로 가다보면 야산아래 포교성 베네딕도 수녀원의 빨간 벽돌 건물이 보이고 금호강변의 넓은 평야지대였는데 금호택지개발지역으로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한강공원은 조선중기 대 유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된 그린공원이다.
  선생의 본관은 청주이고 1543년(중종28년) 시호는 문목(文穆)이며 성주 유촌에서 태어나 강원도 관찰사, 형조참판, 대사헌 등을 지내시고 낙향해 계시다가 72세때인 1614년(광해6년) 이곳으로 오셔서 마을이름 사빈(泗濱)을 공자가 태어난 곳의 강 이름을 빌어 사수(泗水)로 바꾸고 사양정사를 세워 영남 사림(士林4)의 요람이였다.
  퇴계의 세제자의 한분으로 많은 후학을 길러 냈을 뿐 아니라 <심경발휘서(心經發揮序)>와 더불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오선생예설(五先生禮說)>을 편찬하고, 1620년(광해군12년) 78세로 지경제에서 돌아가셨다.
  대구 성리학 발전에 초석을 놓고 문풍(文風) 진작에 크게 기여하신 분이기에 이곳에 한강공원을 조성하였다 한다.
  사양정사앞 섬뫼숲이 있으며 요즘으로는 문패이고 정사안 서쪽 두칸을 서재로 하여 좌측에 지경제(持敬齊) 중심에 명의제(明義齊) 우측에 경회당(景晦堂)에서 후학을 위해 강학(講學)하였던 곳이다. 섬뫼숲과 관어대(觀魚臺)도 한국토지주택공사 협조로 지금의 공원에 복원 되었다.
  대규 유림의 시초를 닦으신 한강 선생의 제자록인 한강급문제현(寒岡及門諸賢)의 표지석이 크게 조성되어 있고 뒷면에는 357명의 본관별로 문하생이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을 보다가 세분의 중시조 어른의 존함이 발견되었다.

  본관이 청도인 나에게 9대조 사총(四聰)식송헌(植松軒)은 장현광(張顯光)호는 여헌(旅軒)선생과 함께 강화(講話)로 지내시고 10대조 시성(是聲)호는 금포공(錦浦公)은 1637년 소현세자 봉림대군과 척화를 주장하는 중신들이 인질로 청나라에 가게 되있을 때 3년동안 심양에서 세자를 호위하였다.  한강(寒岡)정구(鄭逑) 여헌(旅軒)장현광(張顯光) 양(兩)선생 문하(門下)에 수학하셨고 효종8년(1657)에 포도대장과 현종3년(1662년-1664년) 61세때에 45대 삼도수군통제사(종2품) 지내시고 낙향하여 숙종 2년(1676) 75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매년 9월22일 국불천위(國不遷位)로 하사받아 제사를 모시고 있다.
  그 동생 시명(是鳴)호는 삼괴정(三槐亭)은 14세때에 한강(寒岡)정구(鄭逑)선생이 풍병(風病)으로 동래 온천으로 봉산욕행(蓬山谷行)에 가서 온천욕을 하고 오는 길에 식송정을 방문하여 여기서 유(有) 하면서 공의 형제 시성과 시명의 특이함을 보고 칭찬하였다. 인조 27년(1649) 46세에 훈련판관, 병마절제사, 첨지중추부사 개천군수(1654)당상관(종3품) 제수되었다.
  우리 가문에서 세분의 중시조 어른께서 문급제현으로 기록되어 후손에게 묻힐뻔한 사실을 알고 흐뭇하였다.
  그리고 시비(詩碑)가 10개의 표지석으로 가꾸어져 있고 그 일부 시비 1개를 소개하고자 함은 오늘의 시대에 음미해 볼 만한 시(詩)이다.

시대를 탄식하며                                                                   탄시(歎時)

 내관 삼백명 외직 삼천명 가운데                            내관삼백외삼천(內官三百外三千)
 나랏일에 마음을 둔 이 그 몇이 던고?                    왕사유심유기인(王事留心有幾人)
 임금은 근심 걱정으로 밤낮 수고로운데                 성상우근노숙석(聖上憂勤勞夙夕)
 뭇 선비들은 즐거이 밤마다 술에 취해 있구나        군신희희취혼신(群臣嬉戱醉昏晨)

  대구문인협회 국내문학기행 8코스 투어(tour)차량에 심후섭수석 부회장님에 다문박식(多聞博識)한 해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16. 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