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 보면 촉석루를 다시 국보로 환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촉석루는 시조공께서 창건하신 3대 누각의 하나이자 영남제일의 명승이니 우리 청도김문에서는 관심이 가는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조공의 진주목사 부임시기에 관한 근거는『신증동국여지승람』 상주목 산천 사불산 조에 있는 "고종 29년 소경최자 출수상주(高宗二十九年 少卿崔滋 出守尙州)"라는 대목인데, 그 대목대로라면 시조공의 진주목사 부임시기는 1241년이 됩니다.
그러나 본 홈페이지에 운영자가 올린 시조공 연보에 보면 시조공의 진주목사 부임시기가 '1240년 이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운영자가 그리 적은 근거는 위 문건의 연대를 어디서 "고종 28년"으로 보아 그리 적었던 것인바, 근래 이 뉴스를 보고 다시 확인하여 본 결과 아래와 같이 "고종 29년"이 맞는것 같습니다.
추후 좀 더 확인을 하여 "고종 29년"이 맞다는 확신이 서면 시조공 연보를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통화 내용은 위에 적은 바와 같이『신증동국여지승람』 상주목 산천 사불산 조에 적혀있는 "고종 29년 소경최자 출수상주(高宗二十九年 少卿崔滋 出守尙州)"라는 대목이 맞느냐 하는 문제이었습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 대목을 근거로 시조공의 진주목사 부임시기를 역산하기 때문입니다.
즉, '최자'가 상주목사로 나온 해에 시조공께서 '최자'에게 시를 한편 보내셨고 그 시에
"작년에 진주로 떠나는 나를 전송해 주더니, 금년엔 당신도 태수가 되었구려… 상주의 계산도 신선의 고을이지만…"라고 되어 있어 시조공께서 진주목사로 나온 해는 작년이고, 최자가 상주목사로 나온 해는 금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 상주목 산천 사불산 조에 적혀있기로 위 사진에도 있는 바와 같이 "고종 29년 소경최자 출수상주(高宗二十九年 少卿崔滋 出守尙州)"라고 되어 있어 최자가 상주목사로 나온 해는 고종 29년(1242)이고 따라서 시조공께서 진주목사로 나온 작년은 고종 28년(1241)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명대학교 한문학과 이종문교수님의 논문에서는 아래의 근거로 최자가 상주목사로 나온 해를 고종28년 즉 1241년으로 보아 시조공께서 진주목사로 나온 해는 1240년으로 적으셨기에 "고종 28년"이냐. "고종 29년"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天頙,「遊四佛山記」,『 湖山錄』下卷(『韓國佛敎全書』제 6권, 동국대출판부, 1984, 206-207쪽); ....高宗 二十八年 越歲在辛丑 少卿崔滋 出守尙州 聞其奇異 試尋訪焉.... (李鍾文,「金之岱의 生涯와 詩世界」(啓明漢文學會,『漢文學硏究』, 제17집, 2003), pp.31-49.)
그렇다면 동국대 출판부에서 펴낸 『韓國佛敎全書』호산록(湖山錄)의 "고종 28년"이 맞는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종 29년"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이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이교수님께서 확인후 말씀하시기로는,
동국대 출판부에서 펴낸 『韓國佛敎全書』는 최근에 펴낸 책이기는 하지만 예전의 불교관련 서적들을 집대성한 책이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상주목 산천 사불산 조는 당시 조선시대에 고려 말기의 승려 천책(天頙)의 시문집인 호산록(湖山錄)의 일부를 요약 내지는 축약하여 옮겨적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하여 고종28년이 고종29년으로 되었는지 지금에와서는 알 수 없으나 호산록(湖山錄)에는 고종 28년으로 되어있다.
라는 요지였습니다.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조선시대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집필하면서 집필자가 호산록의 '월세재신축(越歲在辛丑)'이라는 부분을 '신축(辛丑)년을 지나서'라고 해석하여(신축년은 고종 28년임) 고종 29년으로 기술하였는지 모르지만 여기에서 '월(越 넘을 월)'이 '지나서'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운영자는 아직 호산록(湖山錄)을 보지도 못했을 뿐만아니라 "고종 29년"이 맞다는 확신이 없어 우선은 홈페이지에 있는 시조공 연보를 그대로 두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