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청도 회산 김광희 기적비
孝子 淸道 會山 金廣熙 紀績碑


<碑 文>

忠臣(충신)은 孝子(효자)의 門(문)에서 求(구)한다는 것은 萬古原則(만고원칙)이다. 그러함으로 忠孝(충효)를 떠나서는 人間(인간)이 形成(형성)할 수 없다. 孝當竭力(효당갈력)은 人子(인자)의 常情(상정)이니 甘旨供養(감지공양)과 斷指注血(단지주혈)과 昏定晨省(혼정신성)에서 冬溫夏○(동온하청)으로 人子(인자)의 道(도)를 實行(실행)하는 이에게 孝子(효자)로 稱(칭)하는 바이다. 會山(회산) 廣熙(광희)는 本貫(본관) 淸道人(청도인)으로서 胡剛公後孫(호강공후손)으로 稀世(희세)의 孝誠(효성)이 至極(지극)함으로 鄕黨(향당)에 讚辭不絶(찬사불절)은 勿論(물론)이요 官民(관민)의 表彰(표창)이 頻繁(빈번)하여 實(실)로 警世(경세)의 孝誠(효성)이 天賦之性(천부지성)이요 人爲(인위)의 强作(강작)이 아니었다. 四歲(4세)에 母親光山李氏(모친광산이씨)가 別世(별세)하였음으로 繼母寶城吳氏(계모보성오씨)의 膝下(슬하)에서 無限(무한)한 慈愛(자애)를 받아가며 成長(성장)하였는데 孝道(효도)가 極盡(극진)하여 養志養體(양지양체)에 一日不怠(일일불태)하고 生計(생계)가 不裕(불유)하여 諸般行商(제반행상)으로 周流四方(주류사방)하여 求得(구득)한 利益金(이익금)으로 반드시 養老(양로)에 必要(필요)한 藥品(약품)과 甘旨物(감지물)을 求(구)하여 俯伏笑獻(부복소헌) 하며 出家時(출가시)에는 婦人(부인) 昌寧曺氏(창녕조씨)에게 付託(부탁)하여 夫(부)의 代行(대행)을 日課(일과)로 하여 昏定甘旨(혼정감지)를 供獻(공헌)케 하여 夫婦極孝(부부극효)가 萬口稱頌(만구칭송)하며 王祥孟宗(왕상맹종)의 孝(효)에 副應(부응)한다고 無日不絶(무일부절) 하였다. 繼母(계모)께서 有四子(유사자)하여 生計(생계)가 各自裕足(각자유족)하므로 母親(모친)을 奉養(봉양)하려고 하오나 母親(모친)이 絶對不聽(절대불청)하고 前夫人所生(전부인소생)의 長子(장자)에게서 居處(거처)함이 마음이 便(편)하며 一生(일생)의 樂(낙)으로 알고 安貧樂道(안빈낙도)하고 守分知命(수분지명)하여 和氣靄靄(화기애애)한 가운데서 人道(인도)를 다한다고 하며 拒絶(거절) 하였다. 所生(소생)의 子中(자중) 長男(장남)인 正熙(정희)는 光州(광주)에 居住(거주)하며 生計(생계)가 裕足(유족)하고 安樂(안락)한 生活(생활)을 하면서 母親(모친)을 모시려고 極力懇請(극력간청)하였으나 母親(모친)이 不應(불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兄의 貧困(빈곤)한 生計(생계)를 協助(협조)하며 그 孝誠(효성)에 感動(감동)하며 紀績(기적)의 一石(일석)을 세워서 子孝於母(자효어모)하고 弟恭於兄(제공어형) 하는 美德(미덕)을 表(표)하는 兄弟和合(형제화합)의 一路(일로)로 生覺(생각)하오나 兄(형)의 頑强(완강)한 不應(불응)에 順調(순조)롭게 되지 못한 것을 念慮(염려)하여 왔으나 一鄕(일향)의 固請(고청)으로 結局(결국)이 碑(비)를 세우면서 畏友(외우) 心湖金潤貞(심호김윤정) 兄(형)이 詳細(상세)한 說明(설명)을 參聽(참청)하여 蕪辭數言(무사수언)으로 이 世上(세상) 드믄 孝行(효행)을 讚揚(찬양)하는 바이다.
西紀一九九二年 月 日
德陽(덕양) 奇靈命(기영명) 撰(찬)
弟(제) 正熙(정희) 謹書(근서)
  소재지 전남 화순군 춘양면 회송리
  건립연대 1992년
  규 모 총높이:3.10m 비높이:1.85m 넓이:0.70m 두께:0.3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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