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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21(수) 03:00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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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적진 클릭하면 작전정보 쫙… 승리를 측량한다

김정호의 후예들
대전 유성구 자운대의 육군 지형정보단에 있는 고산자 김정호 선생 흉상과 대동여지도 동판 탑. 대전=황유성 국방전문기자

디지털 지도 제작
육군 측지측량과 직원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기가 장착된 차량 안에서 실측한 자료들을 컴퓨터에 담아 디지털 지형정보로 변환하고 있다. 황유성 국방전문기자

“병참 정보를 수집하라”
육군 지형정보단 측지측량과 직원들이 GPS 수신기가 장착된 측량 차량으로 이동하며 병참선 변동 상황을 실측하고 있다.황유성 국방전문기자

디지털 지형정보로 만든 대공화망 구성도. 대도시에 포진된 대공화기 위치와 종류, 유효사거리 등을 파악해 공습이나 특수부대 침투 때 이용하는 특수지도다.

《프랑스혁명 6주년인 1795년 10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육군 준장은 왕당파의 반란으로 혁명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파리 도심에서 무자비한 포격으로 반란군을 진압한다. 그 공로로 나폴레옹은 치안군 사령관이 됐으나 혁명정부의 집중 견제를 받자 한직인 육군 지도창 창장직을 자원한다. 나폴레옹은 이곳에서 유럽 지리와 고대 전쟁사 연구를 통해 유럽 정복의 원대한 청사진을 수립했고 이듬해 3월 이탈리아 원정길에 오른다.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은 유럽 지리를 자기 호주머니 속처럼 잘 알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전쟁 수행에 있어서 군사지도의 중요성을 잘 설명하는 이야기다. 》

한국에서 군사지도를 만드는 유일한 기관이 육군 지형정보단(옛 육군지도창)이다. 이 부대는 주요 군사시설로 분류돼 있어 그동안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15, 16일 대전 유성구 자운대에 있는 지형정보단에 들어서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선생의 흉상과 대동여지도 동판을 새긴 탑이 한눈에 들어왔다. 부대 관계자는 “지형정보단은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고산자부대로 불린다”고 소개했다.

▽평면지도에서 입체감을=군사지도는 크게 종이지도와 디지털지도로 양분된다. 종전의 종이지도 독도법 시간에는 “지도에서 새소리,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감초처럼 등장했다. 평면지도의 좁은 등고선을 보고 실제 지형을 눈으로 보듯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안 들리는 새소리를 억지로 들으려 애쓸 필요가 없게 됐다. 음영기복(陰影起伏)지도가 새로 제작돼 전군에 배포됐기 때문. 이 지도는 지형의 높낮이, 험준도에 따라 색깔의 농도를 달리한 음영을 그려 넣어 평면에서도 지형의 굴곡과 입체감을 느끼게 했다. 초보자도 쉽게 지도를 판독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다. 기복지도도 만들 필요가 없게 됐다. 기존의 기복지도는 석고로 지형 모형을 뜬 다음 폴리우레탄을 씌워 울퉁불퉁한 굴곡을 나타내도록 했으나 제작비가 많이 들고 휴대하기 불편한 데다 폐기 시 환경이 오염되는 폐단도 있었다.
▽군사지도에 담긴 비밀=이라크전에서 위용을 떨친 미군의 토마호크 미사일이 해상에서 수백 km 떨어진 지상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었던 것은 첨단 디지털 지형정보가 미사일에 내장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형정보단도 2005년 10월부터 단순히 종이지도만 제작하던 데서 벗어나 미사일, 무인공격기, 정찰기 등에 탑재하는 디지털지도 제작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같은 해 12월 육군 지도창에서 육군 지형정보단으로 부대 이름을 바꾼 것도 종이지도 인쇄공장의 이미지를 벗어나 디지털 지형정보를 통해 첨단 정보과학군을 지향하는 뜻을 담고 있다.
특히 디지털 지형정보를 이용한 각종 특수지도에는 고도의 군사기밀이 숨어 있다. 야지(野地)기동로 분석도, 대공화망 구성도, 주둔지 최적지 분석도, 도하집결지 분석도, 강하지역 분석도, 영상지도 등 수십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야지기동로 분석도는 컴퓨터에서 A라는 도로를 클릭하면 길이, 폭, 포장 유무, 악천후 시 도로 상황 등 수십 개의 도로 속성이 표시된다. 지휘관은 이를 보고 기계화부대 이동 시 시속 몇 km, 도보 이동 시 시속 몇 km 등 정확한 부대 이동시간을 계산해 작전을 수립한다.

대공화망 구성도는 적 대도시의 대공화기 위치와 종류, 유효사거리 등을 인공위성으로 파악한 후 대공화망이 미치는 고도와 화망 취약지역 등을 찾아내 공습이나 특수부대 침투 때 이용한다. 영상지도는 건물이나 댐 등 적 목표물을 실물과 똑같이 축척한 사진 형태로 만들어 특수부대가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타격 목표물을 미리 보고 침투로를 찾도록 하는 지도다. 이 같은 디지털 특수지도는 현재 군단급까지 공유하고 있다. 군은 올해 말까지 보안체계를 강화해 국방전산망이 깔린 예하부대 어디서나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정윤(대령) 지형정보단장은 “첨단 정보과학전은 먼저 보고(감시정찰), 먼저 때리는(정밀타격) 수단이 핵심인데 이런 무기체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 디지털 지형정보”라며 “2008년까지 한반도 전역의 디지털 전장(戰場)지도를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파병에도 필수=해외 파병부대의 안전을 위해서는 현지 정밀지도의 확보가 필수적. 지형정보단은 지난해 3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제1차 한미 지형정보회의를 통해 미 측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한국군 파병지역에 대한 위성영상을 확보한 후 현지 정밀지도와 디지털 특수지도를 제작해 파병부대에 제공했다. 6월 레바논 파병을 앞두고도 같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제2차 한미 지형정보회의는 4월 한국에서 열린다. 최대 의제는 지난해 연합작전을 위해 미 측에 요청했던 해도(海圖)와 공도(空圖) 제공 문제. 한국은 잠수함 작전 등에 필요한 한반도 주변 해저지도가 없다.

김석진(중령) 계획지원처장은 “미 측에서 해도를 제공받으면 종전 푸른색 일색의 바다에 수심 등고선을 그려 넣어 바다 속 지형도 육지처럼 한눈에 알 수 있는 지도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육지의 마도로스=김정호 선생의 ‘후예’들은 지형정보단 내 측지측량과에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위성영상, 항공사진 등으로 파악된 지형정보를 실측하는 곳이다. 측지측량과 직원들은 ‘육지의 마도로스’로 불린다. 김정호 선생은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백두산을 8번 등정하고 전국을 3회 답사했다지만 측지측량과에는 남한을 10여 차례 돌아 본 직원도 적지 않다. 이곳에서 23년 근무한 김방원(51) 군무원은 “남한의 읍 단위는 안 가 본 곳이 없다”며 “1년 중 8∼10개월은 야외에서 생활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조난을 당하거나 간첩으로 몰려 군부대가 출동한 적도 적지 않다는 것.

측지측량과와 함께 지형정보를 산출하는 곳은 위성영상과 항공사진을 다루는 공간영상과다. 위성영상은 미국의 상업위성사인 퀵버드(해상도 60cm)에서 주로 구매한다. 해상도 6.6m인 아리랑 1호 영상은 별 도움이 안 되지만 해상도 1m인 아리랑 2호 영상은 올해 하반기부터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한지역은 위성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항공사진은 국내 민간항공업체에 용역을 준다.

공간영상과와 측지측량과에서 지형정보 자료가 산출되면 지형정보과에서 이를 종합한다. 이어 지형정보과에서 정리된 디지털 지형정보를 토대로 표준지도과와 응용지도과에서 각종 군사지도를 제작하고 마지막으로 인쇄과에서 종이지도를 찍어 낸다.

▽지도 배포=일반 종이지도(표준지도)를 연간 600만∼700만 부 제작한다. 1 대 5만 축척지도 50%, 1 대 2만5000 지도 40%, 1 대 10만 지도 10%의 비율이다. 디지털 정보가 인쇄된 특수지도도 연간 300만 부 만든다. 종전에는 종이지도의 경우 3년마다 갱신했으나 내년부터 남한을 3개 권역으로 나눠 분기별로 새 지도를 찍어 낼 계획이다. 디지털 지도는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다.

대전=황유성 국방전문기자 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