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07 (일) 18:41
From: "김노철"<dbaseman@naver.com>
To: <nowness@naver.com>;
Cc:
Sent: 2012-10-07 (일) 08:11:03
Subject: 호강공 김점이 노비라는 주장에 대하여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61906831&qb=6rmA7KCQ&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ajAiU5Y7tNsstlN6rCssc--041350&sid=UFaiZXSTVlAAABgcFFQ
위 내용에 대하여 메일을 보냈으나 답이 없어 다시 보냅니다.
저는 청도김씨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운영자입니다.
nowness님의 글(숙공궁주와 효빈김씨가 동일인이라는 글)을 보고 댓글을 준비했으나 글이 길어 댓글등록에 들어가지않아 청도김씨 홈페이지 게시판에 몇자 적었으니 답변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적은 글의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cdk.ddisk.com:4433/xe/?mid=cdkboard2&document_srl=4632&listStyle=&cpage=
특히 조선왕조실록 어디에 숙공궁주김씨와 효빈김씨가 동일인이라고 나와있다는 것인지 적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답변이 늦은점,
정확하지 않은 지식을 바탕으로 경솔한 답변을 단 점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답변을 단 시점에는 김점에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개인적인 의견을 단 것인데,
본의아니게 후손분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네요.
답변은 삭제했고, 다시한번 사과드립니다.
효빈김씨와 숙공궁주 김씨가 동일인이라는 주장의 출처는
조선왕조실록이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 고종 9년 9월 기사에
열성조의 후궁중 '옹주,궁주'의 이름으로 봉작된 후궁들을 정1품 '빈'에 봉작하라는 비망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환조의 후궁인 정안궁주 김씨는 정빈으로,
태종의 후궁인 효순궁주 김씨를 효빈으로, 신녕궁주 신씨를 신빈, 숙선옹주 안씨는 선빈, 소혜궁주 노씨는 소빈으로 봉작을 고친것이
승정원일기 고종 9년 10월 기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승정원 일기에 효빈을 개봉전 효순궁주라 기록하였으나, 효순궁주란 작호는 이를 제외하곤 어떠한 기록에도 없습니다.
숙공궁주가 김점의 딸이라는 것은 태종 11년 숙공궁주 책봉기록에 분명히 남아있으며,
이 숙공궁주가 태종의 서장남인 경녕군 이비의 어머니라는 사실과
경녕군 이비의 어머니가 잠저시절 원경왕후 민씨의 시비였다는 사실도 이미 실록에 여러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효빈김씨와 숙공궁주 김씨가 동일인이냐는 것인데,
고종 29년에 개정발행된 왕실족보 선원계보기략에 경녕군 이비의 어머니가 효빈김씨로 기록되어 있어,
이 때문에 거의 모든 번역자료가 숙공궁주 김씨 = 효빈김씨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어보신 부분에 대한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다시한번 경솔한 답변에 사과드리며, 앞으로 답변을 쓸때마다 귀감으로 삼겠습니다.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12-10-08 (월) 17:07
늦게라도 답변을 주시고,
저도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많은 글을 다루다 보면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자기 주장을 굽히기가 쉽지 않은데
시인할것은 흔쾌히 시인하여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본 답글은 신미영님의 글에 꼬투리를 잡자거나
비난의 의도가 아니고 기왕 말이 나왔으니 좀더 정확히 해두자는 의미로 적는 것이니
오해없기 바랍니다.
첫째로 "조선왕조실록 어디에 숙공궁주김씨와 효빈김씨가 동일인이라고 나와있다는 것인지 적시"해달라고 한것은 당초 신미영님의 글에 "실록과 선원계보에 경녕군 이비의 생모가 김점의 딸인 숙공궁주 효빈김씨라는 기록이 있으며"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좌우지간 금번 답변에서도 "이 숙공궁주가 태종의 서장남인 경녕군 이비의 어머니라는 사실과 경녕군 이비의 어머니가 잠저시절 원경왕후 민씨의 시비였다는 사실도 이미 실록에 여러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하셨으니 그 실록을 정확히 적시해주셨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실록을 찾는 이유는 우리 문중에서는 이번 기회에 실록에 잘못 기록된 부분이 있으면 명확히 바로잡자는 이유에서 입니다.
두번째,
신미영님의 첫번째 글에서는
"조선 후기 고종 10년에 왕의 비망기로서
열성조의 후궁중 " oo옹주, oo궁주"에 봉작된사람은 모두 정1품 빈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때 태종의 여러후궁들의 봉작도 OO궁주에서 O빈으로 변경되어
숙공궁주 김씨는 효빈으로
정의궁주 권씨는 의빈,
신녕궁주 신씨는 신빈
숙선옹주 안씨는 선빈,
소혜궁주 노씨는 소빈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아마도 신미영님은 이 "숙공궁주 김씨는 효빈으로"라는 부분에서 숙공궁주 김씨와 효빈김씨가 동일인이라고 확신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번 답변에서는
"조선왕조실록 고종 9년 9월 기사에
열성조의 후궁중 '옹주,궁주'의 이름으로 봉작된 후궁들을 정1품 '빈'에 봉작하라는 비망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환조의 후궁인 정안궁주 김씨는 정빈으로,
태종의 후궁인 효순궁주 김씨를 효빈으로, 신녕궁주 신씨를 신빈, 숙선옹주 안씨는 선빈, 소혜궁주 노씨는 소빈으로 봉작을 고친것이
승정원일기 고종 9년 10월 기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문단에서 보면 문단 앞머리에서는 "조선왕조실록 고종 9년 9월 기사"라고 적고 있으나
문단 뒷머리에서는 "승정원일기 고종 9년 10월 기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제가 아둔해서인지 몰라도 그렇다면 이 문단의 근거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것인지 "승정원일기"라는 것인지 아리송합니다.
하여간 그 어느것이던지 그 근거를 명확히 적시해주셨으면 합니다.
또 한가지 위 두 문단을 면밀히 비교하여 보면 어찌하여 처음 문단에서는
"숙공궁주 김씨는 효빈으로"라고 되어 있는데
두번째 문단에서는
"효순궁주 김씨를 효빈으로"라고 되어 있는지 그것도 궁금합니다.
효빈은 한사람인데 그 '빈'을 봉할때 어느때는 숙공궁주를 효빈으로 봉하고
또 어는때는 효순궁주를 효빈으로 봉하였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둘중에 어는 한가지는 잘못된것이 아닌가 합니다.
끝으로 금번 글에서 신미영님이 적시한바와 같이
"숙공궁주가 김점의 딸이라는 것은 태종 11년 숙공궁주 책봉기록에 분명히 남아있으며"라고 하였으니
숙공궁주가 김점의 딸이라는 것은 명확하고,
김점이 노비출신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에 해박하신 신미영님께서 더 잘 아실것이며,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하면 김점에 관한 글이 몇십개가 올라옵니다.)
효빈김씨가 잠저시절 원경왕후 민씨의 시비였다는 사실도 이미 실록에 여러차례 기록되어 있으니 효빈김씨가 양반가문의 딸이 아니었다는 것도 명백합니다.
즉,
숙공궁주=김점의 딸
김점=노비출신이 아닌 양반출신
고로 숙공궁주=양반출신
효빈김씨=민씨의 시비
시비는 양반출신이 아님
고로 효빈김씨는 양반출신이 아님
따라서 숙공궁주와 효빈김씨는 동일인이 아님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서로 잘못알고 있는것은 고치고
저도 이 기회에 확실히 알아두고자 함입니다.
상세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도김씨공식홈페이지 운영자
김노경
다시한번 늦은 답장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지난번 답장을 받은 이래로, 저도 찜찜하여 시간을 두고 면밀히 자료를 조사하였습니다.
이또한 다시한번 사과드려야 겠네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가 처음부터 답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한 대전제에 있어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제가 숙공궁주김씨를 효빈김씨로 착각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숙공궁주 김씨를 경녕군 이비의 생모로 상정해 놓고,
이 결론을 '당연'히 받아들이고는 나머지 자료들을 제 편한대로 거기에 맞춰 해석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제가 찾을 수 잇었던 자료도..
님께서 언급하셨던 효빈김씨와 숙공궁주 김씨가 별개의 인물...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더군요.
정말이지.. 호되게 배우고 갑니다.
다시한번 사과의 말씀 드리며, 부족한 지식과 착각에 기인하였던, 헛소리에 불과한 제 답글에 대해 지적해주시고,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