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2013년 10월 19일),
김형업(주식회사 경화엔지니어링 대표) 중부종친회 부회장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지방에 갔다가 오후 늦게 상경길에 갑자기 소식을 받고 급히 글을 올립니다.
발인은 10월 21일 오전 08시 30분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031-787-1500) 8호실 입니다.
종원들간에 서로 연락이 되시는 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불과 며칠전 10월 6일 종중모임에서도 뵙고 이런 저런 종사(宗事)를 상의하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길이 없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빈소 :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031-787-1500) 8호실
발인 : 2013년 10월 21일 08시 30분
장지 : 영생관리사업소 제2 추모원 (031-729-3268)
※ 서울지역에서는 내일 오후에 같이 조문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자세한 것은 내일 오후에 운영자에게 전화(010-6284-7726)주시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가능하면 많은 종원들이 유족의 슬픔을 함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청도김씨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운영자 김노경이라고 합니다.
인터넷 서핑중에 귀 카페의 추모사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몇자 적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형업 일족님은 청도김씨 29世(江東派)이십니다.
다른 모든 일에도 그러하셨겠지만 형업일족님은 특히 종사(宗事)에 깊은 관심과 성원으로 향후 문중을 위하여 대업을 이루실 어른이셨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게 되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일족님과 저는 예전에 도화종합기술공사에 근무하실때부터 알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도 강남역 인근에서 직장생활을 하였고 일족님도 회사가 근처이어서 자주 뵈었으며,
일족님의 인도로 강남역 근처에 있는 대승회 사무실도 두어번 방문하였습니다.
추모사 약력에도 나와 있지만 저는 2013년 7월 청도김씨 중부종친회를 조직하여 형업일족님을 부회장으로 모시었고, 돌아가시기 불과 며칠전인 10월 6일에도 중부종친회 임원모임에서도 만나 이런 저런 종사(宗事)를 상의하였으며, 모임을 마치고 그냥 헤어지기가 서운타 하시어 일족님의 차로 저를 집까지 태워다 주시며 많은 정담을 나누었더랬습니다.
그러고 나서 채 보름도 안되어 비보를 듣게 되었으니 정말 허망하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늘 자상하고 누구보다 많은 성원을 하시면서도 별 다른 말씀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셨던 일족님이 새삼 그립습니다.
일족님이 열성을 다해 몸 담으셨던 대승회가 더욱 발전하시어 일족님의 숭고한 뜻이 길이 길이 빛나기를 바랍니다.
2014년 1월 15일 새벽
김노경 사룀
인터넷을 서핑하는 도중에 우연히 형업일족님의 추모사를 보아 여기에 전재합니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 하였던 가요... 우리 문중을 위하여 큰 일을 하실분이 이리 허망하게 가시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故 덕호德灝 혜명慧命 김형업金亨業 고문님을 추모하며 | 자유로운글
2014.01.06 16:58
퍼스나콘/아이디 영역 대승회(qwert7759)
http://cafe.naver.com/muktiyana/168
고故 덕호德灝 혜명慧命 김형업金亨業 고문님을 추모하며
청도 김씨 강동파 29 대손
생生 1953 년 9 월 23 일(양력) - 입적入寂 2013 년 10 월 19 일(양력) 17:30
1972 년 경동고등학교 졸업
1979 년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1981 년 도화종합기술공사 입사
1987 년 대통령 표창(건설부분)
1990 년 12 월 국가기술자격증 토목기술사(상하수도)
2007 - 2012 년 한조엔지니어링 대표이사
2007 - 2009 년 대승회 제 2 대 회장 역임
2009 년 부경대학교 대학원 환경공학과 공학석사
2013 년 7 월 청도 김씨 중부 종친회 부회장으로 선출
2012 - 2013 년 10 월 19 일까지 경화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유족遺族 처 황인경, 장녀 김성은, 차녀 김성민, 장남 김민수
- 추 모 사 -
님은 어느 날 갑자기 오셨듯이 또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떠나셨습니다.
짧은 생애를 사시는 동안, 님께서 해야 할 일을 부지런히도 다 이루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어느 날, 님은 병마病魔가 할퀴고 간 지친 몸으로
도道를 찾아 오셨습니다. 이미 몇 해 전에 고혈압으로 혼절해 입원하셨던 님의 육신에는 살짝 비켜간 마비痲痺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님의 철벽같은 의지와 강렬한 의무감이 님의 생명을 붙잡고 버텨오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님은 해탈을 향한 길을 쉼 없이 걸어오셨습니다.
님은 이미 이루신 사회적 업적과 성취보다도 깨달음과 해탈이라는
영성적 성취에 더 열정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영적 개명을
이루고자 사람들이 모여 대승회의 터전을 세울 때 앞장서 애쓰셨습니다.
님의 헌신적인 참여와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대승회의 시작은 그만큼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님의 영전에 참으로 깊은 감사와 존경을 바칩니다.
남해 보리암에 우리 함께 행공여행을 떠나 보리암 정상 길을 걸을
적에, 님은 아라한阿羅漢 arhat 이 되고 싶다고 큰 목소리로 세 번씩이나
힘차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대승 보살도를 닦아 부처님 buddha 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래도 님은 아라한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이미 이 사바세계를 영영 떠나실 준비가 되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님은 부단히도 삼매를 추구하며 사셨습니다. 님은 늘 병마와 함께 사시면서도, 경전 탐구와 염불念佛 buddhānusmṛti 과 선정수행禪定修行 dhyānapāramitā 에 정진精進하셨습니다. 오 년 전부터는 완전히 금욕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님은 지난 십 년간 참으로 극진히 범행梵行 brahmacarya 을 닦으셨습니다.
그러나 운명같은 병마는 끈덕지게 님을 힘들게 했습니다. 님은 두
해 전부터 매주 세 번씩이나 투석을 받아야만 살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님이 그렇게 죽음과 맞서 싸우면서도 경전을 읽으며 용맹정진해 오셨음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님은 오 년 전부터는 매일 대여섯 시간씩, 그리고 주말과 휴일에는
하루 종일 선정禪定 수행과 염불念佛에 힘쓰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노력해오신 그 세월동안, 님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깨닫고 체험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님은 생애 모든 일에 대해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께 감사드린다고 습관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용맹정진해 오신 수행이 님의 짧은 천명을 늘려줄
수는 없었나 봅니다. 아마도 숙세의 업業 karman 때문이었겠지요. 아니,
지천명知天命하셨기에 더욱 부지런히 해탈의 길에 정진하셨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어느 날, 님은 육신의 생명줄을 미련없이 놓아버리셨습니다.
괴로운 육신을 더 이상 붙잡고 있기가 힘드셨겠지요.
아니, 영영 떠나가야 할 여정旅程이 불현듯 생각나셨음인지요? 그리고 님은 홀연히 이 사바세계를 떠나 높은 세계로 올라가셨습니다.
님이 아미타(阿彌陀 amitābha) 부처님을 염念하며 홀로 높이 날아오르는
동안, 불보살님들의 무량無量 apramāṇa 하신 대자대비(大慈大悲 mahāmaitrī -mahākaruṇa) 무량광(無量光 amitābha) 이 님을 비추어 업業을 불태워주셨겠지요.
님은 눈부신 빛이 가득한 무량광천(無量光天 apramāṇābha) 하늘 허공을 넘어 부처님 열반계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한 번도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오로지 삼매가 깨지지 않게 부동심不動心 acalahṛdaya 을 지키며 끝없는 허공을 타파打破하고 올라가, 마침내 부처님 열반계에 이르셨겠지요.
님께서 서원誓願대로 부처님 열반계에 올라 아라한의 영원한 생명을
이루셨음을 믿습니다. 대자대비로우신 부처님 보살님들께 하염없이 감사드리며,또한 일체 중생이 다 님과 같이 부처님 세계로 해탈하여지이다.
나무 아미타바!
나무 관세음보살!
[출처] 고故 덕호德灝 혜명慧命 김형업金亨業 고문님을 추모하며 (해탈의 빛, 영적 치유와 나눔의 대승회) |작성자 대승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