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방에 또 낙방... 좌절하지 않는 선비정신 그리고 효성
[우리고장 전설] 대호고개- 63세에 과거에 급제한 김현석의 이야기
[419호] 2013년 04월 28일 (일) 16:43:48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는 가흥1동 한절마 병산 종택
옛날 영주땅 한절마을에 김현석이란 젊은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소백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호랑이 울음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기도 하였고 때로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일도 가끔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현석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대사가 대문에서 목탁을 두드리니 현석의 부가 쌀바가지를 들고 나가서 바랑에 부어 주고 합장하는데, 대사가 현석을 훑어 보고는 “쯧쯧” 혀를 차며 “글재주가 아깝도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대사,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고 대문 앞까지 따라가며 묻자 “댁의 아들은 과거 같은 건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소” “아니 그게 무슨 뜻인지?” “호식할 팔자요, 호식할 팔자!” 라고 말하고는 사라집니다. 그 말을 들은 현석과 부는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현석과 부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오직 선비로서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어느날 현석의 부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며느리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는, 그날 밤 대청에 온 식구들을 다 모이게 한 후 “우애란 효의 근본이라고 했으니 우애롭게 살아가자면 참지 아니하고는 화목한 집안을 이루기 어렵다”고 하면서 “집 안팎에서 다투어야 할 일이나 참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독에 참을 인(忍)자를 써서 넣도록 하라”고 하면서 큰 독을 대청마루에 갖다 놓았습니다.

이 때 담 밖 어두컴컴한 곳을 서성이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이는 대사로 둔갑한 소백산 대호였습니다.

현석은 공부를 열심히 하여 괴나리봇짐을 지고 대호고개(죽령)를 넘어 한양으로 가 과거를 보았는데 떨어지곤 하는 것이 수차례였습니다. 하지만 현석은 칠전팔기 정신으로 끈질기게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현석이 절간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호랑이가 문을 긁어대고 으르릉 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했다고 합니다.

현석은 효심 또한 지극 정성이었는데요. 아침저녁으로 부의 잠자리를 살피는 등 문안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 부가 몹쓸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자 현석은 의원을 모셔왔습니다. 의원이 진맥을 하다가 깜짝 놀랍니다. ‘이 병은 천형병이 아닌가’ 의원은 몸서리를 치며 집을 나서니, 현석이 따라가며 “무슨 병인지? 병명이라도 가르쳐 달라” 고 애원하게 되는데 의원은 “마지막으로 이 약을 써 보라”고 첩약을 주면서 “사람고기가 빠졌네” 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립니다.

현석은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천형병이란, 하늘이 내린 형벌이란 뜻이다’ ‘내 살을 베어서라도 부의 병을 반드시 고쳐야지’라고 결심을 합니다. 현석은 숫돌에 칼을 갈아 방으로 들어가 바지를 걷어올리고 칼로 허벅지를 베었어요. 어금니를 악물고 아픔을 참았야만 했습니다. 이윽고 피묻은 살점을 약탕기에 담아 약을 다렸습니다. 그런데 이날도 담 너머에서 대호가 이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현석이 낙방을 거듭하다 그의 나이 62세가 되던 해에도 괴나리봇짐을 지고 죽령고갯길을 올라 숲이 우거진 범바위를 지나 고개 너머로 사라집니다.

   
 
그가 떠난지 한 달이 지난 후 해질 무렵. 낙방 선비 현석은 힘없이 대호 고개를 넘어오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늙은 선비는 범바위에 지친 몸을 누입니다. 그리고는 이내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집니다.

잠시 후 백발의 대사가 나타나서 “대감님, 대감님” 하고 부르는데, 현석은 부스스 일어났다가 다시 잠이 듭니다. 대사는 “대감님, 대감님”하고 다시 불렀습니다.

잠에서 깬 현석은 “아니, 대사는 누구시기에 백면서생인 나를 보고 대감이라고 하는지요?” “소승이 비록 미혹하나, 장원급제 하실 대감님이 틀림없는데 위험한 곳에서 주무시면 아니되옵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현석은 “아니오, 나는 이제 몸은 늙고 또 낙방하니 더 이상 쓸모없는 인간이오. 마지막으로 호랑이 밥이 되어 좋은 일이나 하려 하오”라 하니 대사는 “돌아가셔서 과거준비나 잘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만 산사로 가겠습니다”하고는 산길로 향하는데, 현석이 “고맙습니다”라고 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대사는 온데간데 없고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산비탈을 번개같이 오르고 있었어요. 현석은 몹시 놀라기도 하고 기이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다음해, 풍악을 울리며 대호고개를 걸어오는 긴 행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63세 나이로 장원급제한 현석의 금의환향 행렬이었습니다. 어사화에 쌍학깃을 펄럭이며 집에 도착하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현석의 집에 모였습니다. 크게 잔치를 벌리고 참을 인자를 써 넣은 독을 열어보기도 하였는데 그 독에는 참을 인자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 후 현석은 높은 벼슬을 하다가 노령에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에 힘썼다고 합니다. 어느덧 현석이 나이 여든에 가까워 백발이 성성할 무렵, ‘죽기 전에 대호를 한 번 만나야겠다’며 지난번 대호와 헤어졌던 초옥방으로 갔더니 대호는 촛불 아래에서 참을 인(忍)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상 대호고개 이야기는 타고난 운명에 좌절 하지 않고 지극한 우애와 효성으로 오직 선비의 길을 걸으며 뜨겁게 살았던 영주 청도김씨 가문에서 전해 오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김현석(金玄奭)은 청도김씨 19세손으로 영조 50년(1774) 문과에 급제하여 평안도사와 도총부 부총관을 지냈습니다.

현석의 증조 상주는 장락원정, 조부 노성은 호조참의, 아버지 태건은 호조참판, 아들 제헌은 통덕량으로 우리나라 전통 양반가문이었습니다. 현석은 병산 김난상 선생의 현손(4세손)으로 가흥1동 한절마에 있는 병산 종댁은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글. 이원식 영주문화유산보존회장